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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선공후사(先公後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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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13 09:14 조회4,8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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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한 달은 강의 원고 작성과 인터넷 <시니어신문>에 기고 준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식사도 불규칙했지만 그래도 삼시 세끼는 챙겼다. 간단히 밥과 국과 김치 정도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면 땅콩버터 한 숟가락을 추가해서 먹는 즐거움도 생겼다. 언제 먹어도 땅콩의 구수한 맛은 변함이 없다. 구수한 멋을 내는 말년도 생각해 보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땅콩버터는 심장병 요인인 혈관의 염증을 줄여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현대인의 무서운 적인 심장병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했다가는 인생이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에 신중히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

선공후사(先公後私), 요즘 공사 간에 선후가 뒤바뀌었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우리 고전(古典)인 사서(四書) 중 『大學(대학)』이 있는데 이 대학 책은 원래가 대인(大人)의 길을 가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청소년기에 『小學(소학)』을 마치고 약관 20세로부터 성년이 되면서 필수과목이 된 것이 대학 책이다. 오늘날 전국에 대학이 많은 것도 이 대학 책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대학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으뜸이라 하겠다. 주부대학, 노인대학, 평생교육대학 등 대학 부설이나 종교단체 부설이나 주요기관 부설로 대학이 온통 천지를 이루고 있다. 우리 민족이 학구열이나 성취욕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인데 이 또한 『論語(논어)』 첫마디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는 공자 말씀 중 학습(學習)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배우고서 때에 따라 익히니 기쁘지 않은가’에서의 학습과 기쁨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넘어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 동학(同學)이 더불어 동문이 되어 동창이 되고 상부상조하여 또한 즐거움이 따르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할 정도로 살맛이 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하니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다투거나 성내지 않고 살아가니 이 또한 참 지성인(군자)의 삶이 아닌가.

여기서 선비의 안빈낙도(安貧樂道) 가치관, 군자의 수기치인(修己治人) 또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인생관이 정립되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세계관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大學(대학)』의 학문과 길을 모르면 자칫 빠지게 되는 것이 선입견(先入見)이나 편견(偏見)이다. 따라서 대인이 안 되면 소인으로 살게 되는데 소인의 특징은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안목이 좁고 나약한 데 있다. 그러므로 사리사욕(私利私慾)에 집착하게 되고 이해(利害)관계에 몰두하다 보면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여 갈등과 대립을 초래하게 한다. 급기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간계(奸計)를 부리고 짐승처럼 약육강식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점을 간파한 공자는 일찍이 “어질 인(仁)”자를 교육의 지표로 삼고 일체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제시하고 몸소 3천 제자를 가르쳤던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大學(대학)』에 나오는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니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야(則近道也)라는 말씀이다.

풀이하면 “만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바를 알면 진리 곧 도(道)에 가까우니라.”이다. 이러한 전제를 깨달은 후에 중용(中庸) 책 수장(首章)에 보이듯이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 ‘도(道)를 닦는 것이 교육’이라는 말씀으로 연결하여 수신(修身)하고 수양(修養)하고 수행(修行)하면서 매일 같이 자기를 닦아나가는 수도(修道)하는 것이 참교육의 기본임을 만천하에 밝혔다. 한마디로 선입견이나 편견이 들어설 여지가 없도록 기본을 충실히 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사람이 풀어헤친 머리로 원시생활을 지금껏 지속해 왔다고 상상해보면 지금의 사람 모습은 영원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동물 세계는 원시적일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호랑이, 사자, 원숭이가 변했다고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부지런히 자기를 닦고 가꾸고 꾸미고 의식주를 개선해 오면서 문자(文字)를 발명하고 선조(先祖), 선대(先代)의 역사적 기록과 문화(文化)를 계승하여 창조해왔기에 지금의 문명(文明)의 혜택 속에 사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이처럼 선후(先後)를 알고 길을 찾아서 살아왔기에 이만한 성과를 내고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공(公)과 사(私)도 구분하여 선공후사(先公後私)하고 산 선성선사(先聖先師)와 선현(先賢)들의 공덕이 위대하였으므로 이제까지 소중한 문화유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후학(後學)의 한 사람으로서 삼가 머리 숙여 존경심과 감사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거꾸로 선사후공(先私後公)하는 사람이 늘어간다고 하니 이거 되겠습니까? 홍익인간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다음은 홍익인간(弘益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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