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마당

한자칼럼

문화재 보호에 앞장서는 국민

이상만 유교인
이상만(유교인)
성균관 의례부장
성균관 총무처장
성균관 도덕부흥국민운동본부장

[사자성어]사양지심(辭讓之心)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24 09:49 조회8,756회 댓글0건

본문

땅콩하면 생각이 떠오르는 대통령이 있다. 바로 미국의 제39대 지미 카터 대통령이다. 땅콩 농장을 경영해서 밑천을 잡은 농부 출신이다. 일명 ‘조지아 땅콩장사’로 출발해서 주지사를 거쳐 ‘도덕정치’의 기치를 들고 당당히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재임 기간이 1977년에서 1981년까지 4년이다. 구호만 좋았지 실제는 평판이 안 좋아 실패한 인물로 분류했었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 제일주의에 몰입하여 산업부흥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이다. 또한 1979년 10.26사태가 벌어져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파란의 시기였다,

사양지심(辭讓之心), 요즘 사양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세요?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사양지심이 많은 종족이라는 역사적 인식이 저변에 깊숙이 깔려있다. <맹자(孟子)>, <산해경(山海經)>,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이나 <사고전서(四庫全書)> 등 옛 고전에 보면 옛 동이족은 서로 싸우지 않고 양보하는 어진 심성을 갖고 사는 종족이라 하여 군자(君子)들이 사는 곳이라고까지 기록을 남겼다. 아마도 그러한 유전자적(遺傳子的) 소양이 마침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 코리아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평을 듣게 됐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광복 이후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받던 때라 ‘도덕정치’를 하겠다는 지미카터 대통령에 나름대로 관심을 가졌었다. 내 나이 30줄에 청춘의 피가 끓을 때인지라 ‘도덕정치’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20대 꿈 많은 학창시절을 데모와 최루탄 속에서 위수령, 계엄령, 비상사태의 연속된 고난의 시기를 지나면서 암울했던 적대감을 상호 간에 ‘인간회복’이라는 자기반성을 주제로 난국을 극복하겠다는 당돌한 도전장을 던지고 도서관을 섭렵하며 논문을 준비하던 때라 ‘카터’의 등장은 이름 그대로 종래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과감히 ‘자르는’ 모범을 보여주리라 믿었었다.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재선에 실패하고 낙향하는 카터의 뒷모습이 처량하듯 나 역시 편치 않은 마음이었으나 당시 내가 필요하였던 한국청년유도회와 동양문화연구소 활동에서 유도부흥(儒道復興)이라는 개혁운동에 참여함으로서 선배와 동료와 후배라는 인적 관계 속에서 상부상조하는 도덕적 가치 특히 사양지심(辭讓之心)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피부로 느끼면서 성장하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선후배 간에 동료 간에 선후를 가릴 줄 아는 양식이 있었다. 오죽하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라면 광고가 유행할 정도였다. 그런데 1979년도에 12. 12사태가 일어났다. 소장이 계엄사령관인 대장을 불법 강제 연행하는 하극상을 보인 것이다. 이후로 도덕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적 현상을 무질서로 변질시켜 갔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치 야수 같은 경쟁 심리를 낳고 서로 속이고 짓밟고 중상모략하며 스스로 인간성을 상실해 가게 된 것이다.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계속되면서 민주화의 길을 걸었지만 한마디로 양극화 현상이라는 ‘총체적 위기’는 계속됐다. 최근에 ‘청와대 국정농단’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도 이미 곪아있던 종기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것도 지식층이나 상류층이 아닌 대통령 주변에서 밝혀졌으니 국민은 기가 막힌 것이다. 마침내 백만 명이 촛불시위로 대통령의 퇴진, 하야를 들고나온 것이다.

자공이 정치에 관해 물었다. 공자님 말씀이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가 없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고 한 말씀이 딱! 이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국민에 대한 예의와 겸손이 있어서 존경받는 것이다. 예의와 겸손을 모르면 독재자가 되고 폭군이 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설 수가 없다. 그래서 일찍이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실마리”라고 맹자가 명쾌하게 밝혔다.

최근에 종래의 사양(辭讓)이라는 용어를 가만히 분석해보니 사(辭)는 스스로 겸손하여 굳이 고사하는 것이고, 양(讓)은 남에게 흔쾌히 양보하는 것이라는 두 뜻의 조합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전통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도 주인이 손님을 맞이함에 문밖에서부터 당에 오를 때까지 주인이 “손님께서 먼저 드시지요” 하면 손님이 “아닙니다. 주인이 먼저 드시지요” 하면서 서로 3번 고사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토록 한 것이다.

역시나 서로 간에 상대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에서 사람다운 향취가 나는 것이다.

                                                                          <다음은 是非之心(시비지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