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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에 앞장서는 국민

고려, ‘안정과 번영의 시대’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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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5-08-02 16:58 조회25,6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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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제도 정비작업 거의 마무리, 사회 전분야 ‘눈부신 발전’ 거듭


국제 정세도 평화지속 …… 인주 이씨 막강한 왕실 외척으로 등장, 정가 ‘우려의 목소리’




우리나라는 지금 대외적으로 동아시아 평화체제가 정착되고 내적으로는 제반 문물제도가 완비되는 등 건국 이래 최대의 치세를 떨치면서 사회안정을 구가하고 있다. 또한 불교 및 유학 등 학문과 미술, 공예에까지 문화전반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문종은 즉위 이후 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관제개편을 단행한데 이어 이에 맞춰 녹과전을 제정했으며, 전시과를 개정하는 한편 양계지방의 방어사와 진장 수를 늘리고 그밖의 지방에서도 지방관을 늘려 중앙집권체제 정비를 거의 마무리했다. 아울러 지방 향리 자제들은 인질로 서울에 머물게하여 해당 지역의 통치에 자문토록 함으로써 중앙의 집권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공음전시대법과 답험손실법 등을 마련했고 삼원신수법, 국자감제성 고교법 등도 제정했다.
삼원신수법은 죄인의 신문에 3인 이상의 형관이 입회하게 한 것으로 공정한 수사와 인권보호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국자감 고교법은 생도의 수학 연한에 제한을 가해 자질 부족자를 퇴학시키는 제도로 국자감의 학문 수준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 으로 보인다.

한편 문종은 지난 1502년 인주(인천) 이씨 이자연의 세 딸을 한꺼번에 왕비로 맞아들여 정가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인예태후, 인경현비, 인절현비가 그들인데 어차피 차기 국왕은 이들이 남은 아들 중에서 나올 것이므로 인주 이씨 가문이 외척으로서 지위가 확고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점차 정가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이자연 가문은 과거 왕규나 김치양과 같은 외척과는 달리,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자연의 아들이 금산사의 혜덕왕사로 있고 손자가 현화사에 있는 등 사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의 일가는 이미 조정 곳곳의 고위직에 포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위를 이용, 토지재산도 엄청나게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는 이자연 가문이 국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징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문벌귀족들이 지금은 발언을 별로 하지 않지만, 정가에 가장 힘있는 세력으로 자리잡은 것만은 사실”이라는 말처럼 이들의 향후 행보에 정가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상태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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