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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1936) -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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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5-08-02 16:45 조회25,9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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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나흘 전에 점순이는 울타리를 엮는 내 등뒤로 와서 감자를 내게 건넸다. 나는 받지 않았고 그녀는 독이 오른 얼굴에 눈물까지 흘리며 돌아갔다. 우리집은 마름인 점순이네의 호의로 집터를 빌려 집을 짓고 그 집의 땅을 부치고 있는 소작농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다음날 점순이는 자기집 봉당에 걸터 앉아 우리집 씨암탉을 붙들어 놓고 때리기 시작한다. 나는 화가 치밀었으나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어 애꿎은 울타리만 막대기로 내리친다. 점순이는 사람들이 없으면 자기 집의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집의 수탉과 싸움을 붙였다. 싸움을 하면 언제나 점순이네 수탉이 이긴다. 나는 우리집 수탉이 이기게 하기 위해 고추장을 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우리 닭은 풀이 죽어 버린다.

닭은 오늘 아침에야 정신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가서 소나무 목정이를 따면서 나는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무를 다하고 산을 내려오다가 점순이가 바윗돌 틈에 동백꽃을 소복하게 깔아놓고 앉아서 청승맞게 호드기를 불고, 그 옆에서는 푸드득 푸드득 닭의 횃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나는 약이 올라 지게 막대기로 점순네 수탉을 단매에 때려 죽인다. 점순이는 눈을 흡뜨고 달려들고, 나는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러웠으나 이젠 땅이 떨어지도 집도 빼앗길 처지에 이르렀음을 알고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그때 점순이가 내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왔고, 무엇에 떠밀렸는지 점순이의 몸뚱이가 내게 쓰러진다. 노란 동백꽃 속에 파묻힌 나는 향긋한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때 점순이 어머니가 점순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점순이는 겁을 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내려가고 나는 산으로 내뺀다.


2.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농촌소설로서 신분이나 계층(마름-소작인)을 넘어서서 사춘기의 두 남녀가 사랑에 눈뜨는 과정을 작가 특유의 서정성과 해학성으로 묘사해낸 작품이다. 마름집 딸인 점순이가 나에게 호의를 표시하는데도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안하게 거절함으로써 사건은 시작된다. 애정표현에 대해 거절당한 후부터 보여주는 점순이의 역설적인 애정표현은 기괴하게도 닭싸움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된다. 이 닭싸움은 나와 점순이의 갈등의 표면화이면서 애증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는 홧김에 점순이네 수탉을 죽이고 점순이와의 화해 속에 동백꽃 향기 속으로 누워버림으로써 화해의 대단원을 맞는다. 이처럼 점순이의 역설적 애정 표현과 그것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는 나의 비성숙성은 작품의 흥미와 긴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독특한 개성을 형성한다.


<동백꽃>에서 점순은 마름의 딸로, 화자는 소작농의 아들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계층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마름과 소작인 사이의 갈등과 투쟁을 형상화한 이기영의 <고향>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점순과 나와의 갈등의 원인은 오로지 '성격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자락에서 몸이 겹친 채로 쓰러지는 장면은 서정적 배경과 어울려 그들의 사랑을 자연 정서와 융합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사랑의 아름다움과 건강성을 부각한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는 동백꽃의 냄새이기도 하지만, 그 장면에서 받은 심리적 반응을 감각적으로 드러낸 구절로 볼 수 있다. 성적인 세계를 비교적 노골적으로 그리면서도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분위기를 살린 작품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하는 사랑의 세계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작품은 아이러니에 바탕을 둔 해학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아이러니는 크게 상황적 아이러니와 표현적 아이러니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주체가 읽어질 경우에는 표현적 아이러니라 하고, 그 주체가 없이 세계 자체이거나 운명과 같은 것일 때 상황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이 두 개는 혼융되어 잘 나타난다. <동백꽃>의 아이러니는, 점순이는 알고 있고, 화자는 모른다는 데서 오는 아이러니이다. 아이러니는 언제나 독자는 알고 있는데 작중인물이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독자들은 혼자만 모르고 있는 '나'에게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 재미가 김유정 소설의 미학이며, 그것은 바로 해학성이다. 해학은 대상에 대한 따듯함을 동반한 웃음이다. 그러나 웃음은 상대가 본인보다 열등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태도는 애초에 배제된다. 그 자리에 여유가 자리잡는다. 그리하여 독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인생의 한 단면을 웃음을 동반하며 즐기게 되는 것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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